아내와의 하루, 감당하는 사랑의 무게
- 어느덧 알츠하이머 4년 차, 묵묵히 함께하는 법
- 보물찾기 같은 하루, 나는 학교 관리인처럼 집을 돌고 돈다
- 마음속 말은 꾹 삼키고, 행동으로만 전한다
- 샤워를 피하는 이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다
- 황망함 속에서도 묵묵히 감당하는 남편이라는 이름
- 말없이 함께 있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 FAQ
어느덧 알츠하이머 4년 차, 묵묵히 함께하는 법
아내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처음엔 모든 게 두려웠다. 낯선 병명,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변화들에 조금씩 익숙해졌고, 아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어떻게든 곁에 머무는 법을 배워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는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내는 매일 나를 놀라게 한다. 당혹스럽고 황당한 상황들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오곤 한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보물찾기 같은 하루, 나는 학교 관리인처럼 집을 돌고 돈다
언제부턴가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안 구석을 헤매고 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한 '보물찾기'가 아니라, 이제는 무언가 엉뚱한 곳에 놓인 것들을 수습하기 위한 '순찰'에 가깝다.
돈을 숨겨놓고, 속옷을 가방에 넣어두고, 양말은 냉장고 위에 얹어두기도 한다. 그런 아내의 흔적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가끔은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싶지만, 이젠 따지지 않는다. 그저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고, 또 다음 일을 한다. 학교 관리인이 학교 구석구석을 돌듯, 나도 우리 집을 그렇게 돌고 있다.
조용히 아내가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나의 할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마음속 말은 꾹 삼키고, 행동으로만 전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내에게 '제발 가만히 좀 있어줬으면' 하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런 말 한마디가 아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말을 꺼내는 대신 나는 입을 다물고, 행동으로 전한다. 귀찮더라도 다시 정리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붙잡는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바꾸어 갔다. 아내를 바꾸려 하지 않고, 내가 변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게 우리 둘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기로 했다.
샤워를 피하는 이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다
2주 전부터 아내가 샤워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샤워하자고 하면 실랑이가 이어졌고, 억지로 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왜 그럴까, 이유를 몰랐기에 처음엔 짜증이 났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내는 대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졌고, 나는 그걸 담담히 처리해 왔다.
그런데 샤워 전에 입고 있던 일회용 팬티를 내가 치운다는 사실이 아내에게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오늘은 샤워실 문을 잠그고 한참 후에야 나왔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에 욕실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입던 일회용 팬티에 물을 부어 세탁하려고 한 흔적이 있었다.
일회용 팬티는 고무풍선처럼 불어 있었고, 물과 오물이 뒤섞여 있는 그 장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찔했다.
황망함 속에서도 묵묵히 감당하는 남편이라는 이름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황망하고, 기가 막히고, 눈물이 날 만큼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조용히 그 팬티를 치우고, 욕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내에게 다가가 "괜찮아. 당신 잘못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내가 들려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 했다.
아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집안의 유일한 여자는 아내뿐이고, 그 모든 정리와 뒤처리는 남편이라는 이름의 나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감내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아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마음속에서 되뇌면서.
말없이 함께 있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대화를 줄였다. 아내가 말을 놓치는 시간이 많아졌고, 기억이 사라진 공간엔 침묵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향한 배려, 눈빛 하나, 손끝의 체온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나는 아내가 다시 예전처럼 되리라는 희망을 버렸다. 대신, 지금의 아내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조용히 같이 있고, 말없이 손을 잡고, 하루를 함께 견뎌내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 믿는다.
말보다 묵묵히, 억지보단 수용하며, 사랑은 그렇게 또 하루를 넘긴다.
FAQ
- Q. 이 글은 실화인가요?
A. 예, 실제 간병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성기록입니다. - Q. 왜 이런 내용을 공유하나요?
A.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결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Q. 간병 중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요?
A. 이해, 여유, 그리고 꾸준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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