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잊어도 마음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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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병실에서 마주한 장면
어제는 비 온 뒤라서 그런지 날이 참 맑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길가엔 연녹색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거렸다. 이 창연한 봄빛을 만끽하기도 전에, 새벽에 온 급한 문자를 받고 우리는 김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장모님께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지만, 불과 2주 전까지는 또렷한 인지력으로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셨던 분이다. 갑작스러운 입원 소식에 우리는 걱정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내가 우울해하지 않도록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아내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분을 내는 듯했지만, 우리가 병원에 가는 목적을 몇 번 이야기해도 금세 잊어버렸다. 일요일 병원은 한산했고, 우리는 면회시간 전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실이 있는 7층으로 향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담당 간호사로부터 입원 경위를 들은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손을 잡고 커튼을 젖히자 장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아내는 "언니, 어디가 아프세요?"라고 물었고, 장모님은 딸을 알아보지 못한 채 수척한 얼굴로 "누구세요?"라고 되물었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침묵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츠하이머병의 단계별 변화
알츠하이머병은 서서히 진행되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초기에는 단순한 건망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점차 언어, 판단력, 감정 조절 등 다양한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1단계: 무손상 – 인지 기능 저하 증상이 없고, 정상적인 일상생활 유지.
2단계: 매우 가벼운 감퇴 – 경미한 건망증, 주위에서 인지 어려움.
3단계: 가벼운 감퇴 – 이름, 일정 기억 어려움, 가족이 인지 가능한 수준.
4단계: 중등도 감퇴 – 최근 사건 기억 상실, 금전 관리 어려움.
5단계: 중증 초기 – 주소, 날짜 혼동, 일상생활에 일부 도움 필요.
6단계: 중증 – 가까운 사람 인식 어려움, 일상생활 전반 도움 필요.
7단계: 말기 – 언어 및 운동 능력 상실, 전적 의존 필요.
가족의 역할과 지원
알츠하이머병은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닙니다. 관계를 잃고, 시간과 장소, 그리고 자신마저도 서서히 잊어가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의 역할은 단순한 간병을 넘어서, 환자의 남은 세계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기억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환자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변화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조율해야 합니다. 특히 언어 능력이 약화될수록, 말보다 표정과 눈빛, 손의 온기 같은 비언어적 소통이 중요해집니다.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반복되는 질문에도 짜증보다 인내로, 낯선 눈빛에도 상처받기보다 마음을 단단히 하며 함께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간병하는 가족 스스로가 지치지 않도록 지역사회 자원과 전문기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은 ‘함께’라는 말의 무게를 가장 깊이 느끼게 만드는 병입니다. 우리가 함께여야 할 이유는, 그들이 더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란 그 침묵 속에서도, 함께 있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정의 소통이 어려워질수록 중요한 건 '존재의 증명'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들러주는 사람, 익숙한 향기, 따뜻한 음식 한 끼. 이런 반복적인 일상 속의 애정이 결국 환자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됩니다.
결론: 마음이 기억하는 이름
그날 병실 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두 사람 사이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내 아내는 장모님의 손을 잡고, 장모님은 딸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기억은 멀어졌지만, 손끝의 체온은 서로를 기억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기억을 지워갑니다. 하지만 사랑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들의 삶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정의 곁에서, 묵묵히, 다정히 함께할 것입니다.
사랑은 때로 이름을 잊어도, 마음은 서로를 기억합니다. 이 봄의 푸르름처럼, 오늘도 우리는 그 기억의 끝자락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병은 잊는 병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더욱, '같이 있음'이 답이 됩니다.
FAQ
- Q. 알츠하이머병은 유전인가요?
A. 일부 유전적 요인이 있지만 대부분은 환경과 노화 관련입니다. - Q. 초기 증상은 어떤가요?
A. 이름이나 약속을 자주 잊거나, 길을 헤매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 Q. 알츠하이머와 일반 건망증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A.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기억이 떠오르지만, 알츠하이머는 힌트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알츠하이머는 인지 기능 저하와 함께, 가족 간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각 단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지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환자의 마음을 기억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치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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