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습니다, 아내가 치매였다는 걸
반복되는 말, 그게 신호일 줄 몰랐습니다
처음엔 정말 몰랐습니다. 아내가 치매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녀는 언제나 밝고 온화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그런 병이 찾아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직장에 바빠서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면 피곤에 지쳐 잠들기 일쑤였죠. 그런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아내에게 너무 소홀했던 시간이 얼마나 컸는지 뒤늦게야 알게 됐습니다.
50대 초반, 초로기 치매라는 진단
아내가 본격적으로 치매 판정을 받은 건 2022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판정 이전 7~8년 전부터 이상 신호가 있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50대 초반이었고, '초로기 치매'라는 단어는 우리 부부에게 너무 생소했죠.
가끔 같은 말을 반복했고, 무언가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저는 "여자는 좋아하는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라는 말로 그냥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게 그렇게 큰일로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럽 여행에서 느꼈던 이상한 기운
2015년, 직장을 잠시 쉰 후 선배 부부와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어요. 선배가 "제수씨는 반복해서 말씀하시네요"라며 조심스럽게 말할 정도였죠.
같이 있는 저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내가 웃으며 "여자는 좋아하는 얘긴 계속 반복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걸 보고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미소가 얼마나 아련한 신호였는지...
경도인지장애와 치매의 첫 계단
2021년, 함께 병원을 방문한 끝에 아내는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지 몰랐습니다. 약을 먹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면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시간은 잔인하게도 우리의 예상을 배신했습니다.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반복되는 말과 혼란스러운 표정이 늘어나면서 치매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따뜻했던 아내
아내는 늘 교회 봉사와 집안일에 헌신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6년 넘게 목욕시켜 드린, 말 그대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인지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은, 천천히 무너지는 세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의견보다 남의 말을 먼저 듣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던 사람. 그런 아내를 더 일찍 안아주지 못했다는 게 지금도 가장 큰 후회입니다.
치매 판정 이후, 가족으로서 겪는 변화
아내가 치매 판정을 받은 후,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내가 헷갈리지 않도록 집 안의 물건 위치를 고정시키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저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죠. 감정적으로 휘청일 틈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억보다 감정을 지켜주는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거든요. 눈물이 나도, 억울함이 있어도, 저는 아내의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남편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이었어요.
이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바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지금,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혼란스럽고 외롭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이런 글 하나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치매는 단지 의료적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용기이자, ‘지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아래 링크들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소중한 시간이 될 줄을.
자주 묻는 질문
- Q. 초로기 치매는 몇 살부터 발생하나요?
보통 40~65세 사이에 진단받는 조기 치매를 의미합니다. - Q.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치매 신호일 수 있나요?
네, 반복적 발화는 초기 치매의 흔한 증상입니다. - Q. 가족이 치매 진단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실적 대처가 중요하며, 초기엔 약물과 루틴 조정이 도움이 됩니다.
- 아내는 50대 초반에 초로기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 반복된 말과 작은 기억 오류는 이미 신호였을 수 있습니다.
- 조기 검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지켜줍니다.
- 치매는 정보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 레이블: 하루의 기록, 기억의 틈새, 가족에게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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