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단계별 주요 증상과 대처법 _ 아내와 함께한 기억의 지도
치매의 시간 속을 걷다 – 나의 아내, 나의 하루
작고 조용한 이상 신호, 그 첫 번째 순간
치매라는 말은 어딘가 막연하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건강 정보지에서 ‘조기 진단’이나 ‘예방’이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될 뿐, 내 삶과 맞닿은 이야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단어가 ‘내 아내’를 향해 다가왔을 때,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기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빠져나가듯, 아주 작고 조용하게 무너져갔다.
그 시작은 사소했다. 아내가 같은 물건을 두 번 사고, 약속을 헷갈리고, 내가 했던 말을 몇 분 만에 잊어버렸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반복되자, 나는 점차 불안을 느끼게 됐다.
1단계 – 경도인지장애: 사소한 혼란의 시작
우리는 그 단계를 ‘혼란’이라고 불렀다. 아직은 기억의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상태였다. “우유를 샀던가?”, “오늘 몇 일이지?”, “이거 어디 두었더라?” 하는 말들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말들 속에는 ‘나도 모르게 불안해하는’ 아내의 눈빛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 루틴을 만들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덜 혼란스럽도록, 하루를 정해진 순서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기상 시간, 식사 시간, 산책 시간까지 종이에 적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였다. 메모와 포스트잇, 벽에 붙인 스케줄 표. 그렇게 우리는 조심스럽게 ‘질서’를 만들어가며 무너지는 중심을 붙잡았다.
2단계 – 초기 치매: 낯선 하루, 흐려지는 자신감
그다음 변화는 아내의 감정선이었다. 익숙했던 일들이 낯설어졌고, 자신감은 눈에 띄게 줄었다. 예전처럼 책을 읽다가도 단어 하나를 잊고는 멈칫하고, 식사 준비 중 재료 순서를 헷갈려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으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치매는 기억만이 아니라 ‘존재감’까지도 흔드는 병이라는 사실을.
나는 ‘실수’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라고 말하며 안심시키고, 아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을 계속 주려 애썼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 물컵을 챙기거나, 음악을 틀거나, 빨래를 개는 일을 부탁하는 식이다. 그렇게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감정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3단계 – 중기 치매: 점점 멀어지는 ‘우리’
어느 날 새벽,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열려 했다. “회사 가야지”라는 말에 나는 잠에서 깼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퇴직한 지 이미 수년이 지났는데, 아내는 여전히 어딘가로 출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후로 현관문에는 자동 잠금장치를 설치했고, 집안 곳곳에 ‘여기 화장실’, ‘주방’, ‘옷장’ 같은 시각 표지를 붙였다.
이 시기에는 판단력과 방향 감각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게 맞아?”, “왜 여기 있지?”라는 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다. 길을 잃거나,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대화 도중 예기치 않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주 3회 상담을 진행하며 감정적 대응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반응’이었다. 혼란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아내가 느끼는 그 현실을 함께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4단계 – 말기 치매: 말 없이 존재하는 사람
말기 치매는 말 그대로 말이 사라지는 시기였다. 의사소통이 힘들어졌고, 감정 표현도 거의 없었다. 식사도 도움 없이는 어려웠고, 화장실, 옷 갈아입기, 양치질 같은 모든 생활이 간병자의 손을 필요로 했다. 나는 그때부터는 ‘기억’을 바라기보다 ‘감각’을 지키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아내가 좋아하던 트로트 음악을 틀고, 손을 꼭 잡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눈동자가 약간 움직일 때면, 나는 여전히 그녀가 여기에 있다고 믿었다. “이젠 아무 반응이 없어졌어요”라는 의사의 말보다, 나는 그 손의 떨림 하나하나를 더 소중하게 여겼다.
함께 걷는 사람,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사랑
치매는 잊어버리는 병이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반복된 식사, 대화, 산책, 웃음, 그리고 작은 다툼까지도 우리 둘만의 흔적이 되어 남아 있다. 아내는 내 이름을 잊었지만, 나는 아내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믿는다. 치매는 결코 끝이 아니라고. 그것은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우리가 ‘다르게’ 사랑하게 되는 한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의 끝까지 함께 걷고 싶다.
요약정리
자주 묻는 질문
Q. 치매는 단계를 기준으로 진단하나요?
A. 네, 전문의의 진찰과 인지기능 검사 결과를 통해 단계별로 구분하고 대응법이 달라집니다.
Q. 말기 치매에도 감정 교류가 가능한가요?
A. 언어는 사라지더라도 음악, 촉각, 시선 등을 통해 감정적인 연결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이 치매 가족 돌봄의 길에 작은 위로와 방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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