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그날의 전화, 사라진 기억의 벽 앞에서

by 아내의 치매일기 2025. 7. 3.
반응형

 

그날의 전화, 사라진 기억의 벽 앞에서

휴대폰 전화를 지인으로부터 받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
휴대폰 전화를 지인으로부터 받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

예기치 못한 전화 한 통 속에서

며칠 전, 아내의 핸드폰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요즘 저는 스팸전화나 광고전화가 많다며 아내에게 “받지 말라”라고 늘 주의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평소 거의 전화기를 열지 않았고, 전화를 받는 일도 드물었죠.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습니다. 집안에서 제가 조용히 일하고 있을 때, 핸드폰 너머에서 “언니~ 반가워요”라는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는 순간 미소를 머금는 듯했지만,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제가 누구죠?”라는 질문이 망설임처럼 흘렀고, 저는 그 순간, 아내가 혼란스러워할까 봐 핸드폰을 받아 상황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전화 속 목소리는 밝았지만, 아내의 눈빛에는 불안과 당혹이 뒤섞여 있었고, 그 모든 것이 그 전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대학원 동기 아내분

제가 전화를 이어받자, 걸려온 분은 제가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하던 동기의 아내였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반가움에, 예전의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한번 얼굴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대답은 무미건조하게 이어졌습니다. “네… 예전에… 네…” 짜인 대답처럼 이어지는 말들 사이로, 제가 느낀 건 아내의 마음 한편이 텅 빈 듯한 공허함이었어요. 그 순간, 과거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 그 기억이 사라지면 관계는 어떻게 남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왔습니다.

 

사라지는 기억이 남긴 흔적들

최근 아내의 지인들에 대한 기억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자주 왕래하지 않던 지인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지워졌고, 가까운 사람의 이름마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아침에 나눈 대화조차 기억되지 않고, 잠시 전 일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하루 전인지 며칠 전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 상태죠. 과거의 기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최근의 일상은 마음속에 쌓이지 않는 듯합니다. 다행이라면 주간보호센터에 가면서는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줍니다. 저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아내의 옆에서 점점 그녀와의 정서적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어찌 될지 희뿌연 안갯속 같기만 합니다.  지난 여행의 추억, 웃었던 순간들이 그녀의 기억에서 하나둘 지워질 때마다 저는 누구인지 설명해야 하고, 그녀를 오롯이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불안 앞에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

아내를 돌보는 일상은 단순히 병을 돌본다기보다 기억의 흔적을 지켜주는 일에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록하기**: 매일의 사소한 대화, 식탁 위의 풍경,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사진과 글로 남기기.

- **소통하기**: 잊힌 이름이나 관계는 천천히 반복하여 이야기하기.

- **알림하기**: 중요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억을 돕기.

- **보호하기**: 낯선 연락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지인들에게도 아내의 현재 상태를 조심스레 알리는 것.

 

나중에 다시 연락이 오면 그 대학원 동기 아내분에게는 “최근 아내가 기억력이 많이 떨어져 상황을 설명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지인에게 상황을 알릴 때 어떻게 시작할까요?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어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라는 서두로 부드럽고 정중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아내의 정서적 반응은 어떻게 도울 수 있나요?
    잦은 혼란과 당혹 속에서, 안정감을 주는 음성 메시지나 편지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기억이 더 사라질까 봐 두렵습니다.
    불안할수록, 하루하루를 부드럽고 꾸준한 일상으로 묶어주는 것이 뇌 자극과 심리적 안정에 긍정적입니다.
🏁 요약
그날의 전화는 작은 연결처럼 보였지만, 아내의 기억 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과거의 얼굴은 희미하게 흐려지고, 최근의 순간은 쌓이지 않으며, 가장 가까운 이마저도 언젠가는 이름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을 정성으로 기록하고, 사랑과 기억을 매일 지켜주는 것입니다. 작은 기록이 언젠가는 아내에게, 나아가 우리 가족에게 남는 흔적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도, 혹시라도 기억이라는 조각이 사라질까 두려운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하루도 마음 한 켠에서 따뜻하게 기록되길 바랍니다.

 

👉 관련 글: 기억을 지키는 일상의 기록
👉 관련 글: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준비

 

 

댓글로 당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작은 위로가 되는 공감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반응형